취업 전 마이웨이로 살았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누가 나를 어떻게 보든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좋았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좋았다. 싫으면 보지 않았고, 좋으면 만났다. 단순했다. 오로지 나만 생각했다. 앞으로의 내 인생, 내 변화, 내 마음까지 오로지 내 것이었다. 하지만 취업하고 직장인이 되면서 모든 것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남들이 보는 내모습, 내행동, 내말투에 신경쓰게 되었고 나는 예민해져갔다.
그 모습이 처음에는 싫었다. 눈치보는 내가 싫었고, 나답지 않은 내가 싫었다. 혼란이 가중될 떄쯤 오랜만에 사람들을 찾았다. 거의 연락을 안하다시피해서 사실 그 사람들이 내 연락을 무시해도 나는 할말이 없었다. 하지만 연락한 사람 모두 나를 반겨주었다. 서운했다는 말과 함께 반갑다는 말도 함께 들었다. 감사했다. 그들이 나를 욕해도 나는 할 말이 없을 만큼 그들이 원할 때 나는 피했다. 그당시 나는 너무 힘들었고, 나는 내 자신 하나만 감당하기에도 벅찼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반겨주었다. 애써 내가 변명하지 않아도 이해해주었고, 오히려 다시 연락해준 것에 대해 고마워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인생을 헛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들의 소중함도 함께 느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더 많은 가면을 쓰게 되었다. 회사와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 진짜 모습을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들이 정한 틀에 나를 가두고 싶어했다. 그래서 맞춰주기로 헀다. 가끔씩 진짜 내가 튀어나오긴 하지만, 곧 익숙해질 것이다. 무슨일이든 시간이 약이라는 걸, 사회생활 전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면이 하나 둘씩 늘어가다보니 정말 진짜 나의 모습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그리워졌다. 순수했던 아니 찌질했던 나의 모습까지 사랑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해졌다.
어제는 내가 닮고 싶은 아니 존경하는 분을 만났다. 2살많을 뿐인데 내가 참 의지하는 분이다. 그분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먼저 묻지 않았다. 아니 내가 먼저 말할 걸 알고 계셨을 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한 수, 두 수를 먼저 내다보는 분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인지, 무슨 생각으로 버텨야 하는지 말이다. 뭐든 진지하게 생각하는 편인 우린 대화가 잘 통했다. 마이웨이로 살던 내가 남의 눈치를 보고 남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말을 들은 그분은 나에게 좋은 변화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직선인 사람과 곡선인 사람이 있다. 나는 직선인 사람이고, 곡선을 배우고 있는 과정이라 하셨다. 나중에는 사람에 따라 자유자재로 이 두 선을 유연하게 사용할 때가 올거라 하셨다. 덧붙여 이미 너도 고수라고 말씀해주셨다. 내 고민보다 그분의 인정을 받은 것이 더 기분좋았던 하루였다. 오랜만에 만나도 늘 어제만난 것처럼 편하고 편한 시간을 보냈다.
스터디 시절 열심히 노력하고, 함께 치열하게 보냈던 사람들을 만나니 문득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 내가 머리를 채우고, 배우고, 습득하는 그 과정이 진절머리나도록 싫었는데, 그 유식함이 그 고통스럽지만 뿌듯한 성취감이 그리워졌다. 지금 하는 일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편하다. 쉬엄쉬엄 살고 있다. 가끔이지만 유흥도 즐긴다. 하지만 그뿐이다. 재미없다. 내 스타일, 내 삶은 아닌 듯하다. 대화를 하면서 그 때 그 시절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이 툭 튀어나왔다. 정말 그만 두고 싶더라도 올해는 버텨야 겠다. 빚도 갚고, 칼퇴근 시간에 맞춰 자기계발을 하며 그때 그 시절보다 더 열심히 살것이다. 그리고 보여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나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