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브런치쓰다.

초고 쓰기

이뤘다 2021. 9. 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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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할수없는나.

 

아직도 생생하다. 물건이 머리에 떨어진 순간 나는 머리가 분명 두 동강이 났다고 생각했다. 통증보다는 머리상태를 제일 먼저 체크했다. 다행이다. 머리가 붙어있었다. 요리조리 만져봐도 멀쩡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머리는 꽤나 튼튼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욱신거렸지만, 처음에 강한충격 다음에 바로 안도감이 와서 그런지 벽에 머리를 부딪힌 통증정도라고 느껴졌다.

 

그렇게 다시 일을 하려던 순간 목뒤에서 축축한 땀이 느껴졌다. 일을 너무 열심히 했나? 평소에 땀이 잘 안나는 체질이라수상했지만, 긴장이 확 풀렸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땀을 닦았고 내 손에 피가 흥건했다.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믿을 수 없었다. 분명 머리가 잘 붙어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응급실로 실려갔다. 실려가는 내내 내 정신은 멀쩡했다. 구급대원분께도 연신 여쭤봤다. '별일 아닌거 맞죠?'

 

병원에서 여러가지 검사를 받았다. 파상풍 주사도 맞고, ct도 찍었다. 다행히 외상만 문제였고, 머릿속은 깨끗?하다는 처방을 받았다. 그자리에서 머리를 꿰메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안도했다. 다행이었다. 하루에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집에 와서 따끔거리는 부위때문에 제대로 숙면자세를 취할 수 없었지만, 이 정도로 다친것에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일주일 뒤에 소독하러 가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4일차 정도에 일어났다. 불면증에 시달렸다.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고 꿈에서는 대장장이가 내 머리를 내리치는 꿈을 꿨다. (생각보다 잔인하다) 그 대장장이는 내 머리를 내리치지 않고 꼭 내 귀 가까이에서 위협만 주었다. 아무에게도 이야기 할 수 없어 다시 병원을 방문했고 외상 센터에서는 정신의학과로 나를 넘겼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았나? 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의학과는 몇 달 째 예약이 밀려있었고, 나는 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아 떠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행히 좋은 선생님을 만나 생애 처음으로 정신의학과에 갔다. 진단명은 우울에피소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였다. 오직 선생님께만 솔직하게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친한 친구들 앞에서도 가족 앞에서도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고 싶었기 때문이다. 걱정을 시키고 싶지 않았고, 금방 회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렇게 이중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를 제일 고통스럽게 만드는 건 불면증이었다. 자면 대장장이 꿈을 꾸기 때문에 자기 싫은 것도 있었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처방받은 약을 먹으면 잠드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개운하지 않았다. 내가 나인 것 같지 않았다. 새벽에는 잠이오지 않는 내가 답답해서 울고 낮에는 잠이 오지 않는 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했다. 낮에 산책하는 것도 권유하셨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하더라도 모자와 마스크로 철저하게 나를 숨겼다. 마치 연예인이 된 느낌이었다. 이유는 정 반대였다. 연예인은 멋진 자신의 모습을 숨겨 자신의 일상을 지키려고 했다면 나는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이고 쉽지 않았다. 그래서 산책을 하더라도 새벽이나 밤에 했다. (하지만 새벽에도 밤에도 우리나라는 걷은 사람이 참 많았다. 다들 나처럼 사연이 있는 사람들일까? 가끔 궁금했다)

 

원래도 친구를 자주 만나는 성격은 아니였지만, 더 사람을 멀리하게 되었다. 내가 굳이 연락해야 할 사람은 없었다. 오는 연락에도 일상 평범하게 똑같이 지내고 있다고 둘러댔다. 나도 그사람도 그게 편하니까.

 

그냥 나는 기다렸다. 이 모든 증상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으면 나아질거라는 기대로 버텼다. 3개월이 지나도 변화는 미미했고 나는 선택을 해야만했다. 지금 이대로 내 인생을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것인지. 주도적으로 내 인생을 바꿔볼 것인지.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조금씩 해보기로 했다. 이대로 내 자신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동안 내가 열심히 살아왔던 세월이 너무 억울해지니까.

 

집에서 가만히 기다리면서 울고만 있기에는 현실이 다가왔다. 생활비도 점점 떨어져가고, 병원비를 낼 돈이 없어 병원 가는 일도 멈췄다. 병원에 가는 일보다 당장의 생활이 더 두려웠다. 돈이 줄어드는 게 무서웠고 이대로 무능력자로 사회부적응자로 아픈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두려웠다. 매일이 불안과 두려움이었고 조급함과 초조함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있는 돈을 다 써서 주도적으로 정말 다양한 시도를 했었다. 줌강의로 다양한 사람도 만나보고, 뇌공부도 해보고, 안만나던 친구도 정말 가끔이지만 만나기 시작했다. 

 

살기위해서 시도한 것들이 많지만, 모두 그 때뿐이었고, 내일이면 또 달라질 내가 무서웠다. 오늘은 웃지만, 내일을 울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나를 잃어가고 있을 때 쯤 나는 또 다시 다른 선택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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