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닮고 싶은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는 중이다. 예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터뷰인가 책에서 봤던 문구 중에 기억에 남는 글이 있었는데 그걸로 무라키미 하루키의 팬이되었다. 어떤 글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작가의 이름만은 확실히 남았다. 작가의 책을 탐독하면서 그 글귀를 찾아나갈 예정이다. 그 시작으로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뽑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상이 궁금하기도 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궁금했다. 읽으면서 책의 모든 부분이 감동이었고, 적어나가기 바빴던 것 같다.
p.58 나는 나를 무슨 천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뭔가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물론 이렇게 삼십 년 넘게 전업 소설가로 밥을 먹고 있으니 전혀 재능이 없는 건 아니겠지요. 하지만 그런 것에 대해 내가 이러니 저러니 궁리해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판단은 다른 누군가에게 만일 그런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면 그렇다는 얘기지만 맡겨두면 될 일입니다.
진짜 잘난 사람은 자기 입으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런 사람인 것 같다. 그는 어떤 특별한 힘에 의해 소설을 쓸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라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떤 기회를 부여받았을까 생각해보니 블로그가 있는 것 같다. 자격이 있는 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감사한다. 이렇게 나의 생각, 일상을 기록함에 말이다. 그다음 일은 또 그 다음일이다. 그처럼 겸손하고, 묵묵히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싶다.
사람들은 왜 유독 아무타가와상(신인작가에게 주는 신인상)에 그토록 신경을 쓸까, 이따금 신기하게 여겨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설령 그때 아쿠타가와상을 탔다고 쳐도 그것 때문에 세계의 운명이 바뀔 것도 아니고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대체로 그때 그 상태 그대로였을 것이고, 나도 그 이후 삼십 년 넘게, 뭐 약간의 오차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대체로 거의 같은 페이스로 집필을 계속했을 것입니다.
참된작가에게는 문학상 따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주 많다라는 것이겠지요. 그 하나는 자산이 의미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실감이고, 또 하나는 그 의미를 정당하게 평가해주는 독자가 그 수의 많고 적음을 제쳐두고 분영하게 존재한다는 실감입니다. 그 두가지 확실한 실감만 있다면 작가에게 상이라는 건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것입니다.
상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독자"라고 말하는 작가다. 어떤 문학상도 훈장도 호의적인 서평도 내 책을 자기 돈 들여 사주는 독자에 비하면 실질적인 의미는 없다고 말하는 그를 보면서 많은 것을 돌아보게 된다. 돌아보면 나는 참 세속적이었던 것 같다. 열심히 공부하면 됬지보다 성적표에 더 집중한 것처럼 말이다. 내가 기쁘기 보다는 그걸 본 부모님, 친구들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었던 것 같다. 지금은 어떨까? 확신할 수 있을까? 본질을 찾아나가기에 아직 난 갈길이 멀다. 오히려 이름 앞에 아쿠타가와상 작가라는 스펙이없어서 홀가분 하다는 그를 보니 더 자유롭고 편해보인다. 그냥 무라카미 하루키 자체로서도 충분히 멋있기 떄문이다.
무엇이 꼭 필요하고 무엇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지, 혹은 전혀 불필요한지를 어떻게 판별해나가면 되는가. 매우 단순한 얘기지만 '그것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은 즐거운가'라는 것이 한 가지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뭔가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데 만일 거기서 자연 발생적인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아낼 수 없다면 그걸 하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뭔가 잘못된 것이나 조화롭지 못한 것이 있다는 얘기힙니다. 그런 때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즐거움을 방해하는 요소를 몰아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점점 나 자신을 세상에 맞춰나갈 때가 많다. 그것이 세상을 살기 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나를 잃어가기도 한다. 세상에 반대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때때로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자기 자신도 잃지않고, 세상까지 바꿔나가는 삶을 보면서 내 인생은 후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자 역시 훌륭하지만, 나는 후자이고 싶다. 무소의 뿔처럼 가라는 말이 생각나는 오후다.
장편소설을 쓸 경우,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매를 쓰는 것을 규칙으로 삼고 있읍니다. 좀 더 쓰고 싶더라도 20매 정도에서 딱 멈추고, 오늘은 뭐가 좀 잘 안된다 싶어도 어떻든 노력해서 20매까지는 씁니다. 왜냐하면 장기적인 일을 할 때는 규칙성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쓸 수 있을 때는 그 기세를 몰아 많이 써버린다. 써지지 않을 때는 쉰다, 라는 것으로는 규칙성은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타임카드를 찍듯이 하루에 거의 정확하게 20매를 씁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때에 나 좋을 대로 하는 것, 그것이 작가에게는 자유인의 정의의다. 예술가가 되어서 세간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부자유한 격식을 차리는 것보다 극히 평범한 근처를 어울거리는 자유인말이다. 장기전에 약한 나에게 필요한 글귀였다. 늘 장기적인 일을 할때면 쉽게 지치고, 피로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모두 에너지가 넘칠때는 몰아서 하고, 없을때는 놔버리는 습관때문이었다. 하루에 할당량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고독한 작업, 이라고 하면 너무도 범속한 표현이지만 소설을 쓴다는 것은 특히 긴 소설을 쓰는 경우에는 실제로 상당히 고독한 작업입니다. 때때로 깊은 우물 밑바닥에 혼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아무도 구해주러 오지 않고 아무도 "오늘 아주 잘했어"라고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해주지도 않습니다. 그 결과물인 작품이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는 일도 있지만, 그것을 써내는 작업 그 자체에 대해 사람들은 딱히 평가해주지 않습니다. 그건 작가 혼자서 묵묵히 짊어지고 가야 할 짐입니다.
인생은 고독하다라는 말이 있다. 결국 인생은 혼자라는 말도 있다. 읽으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내가 주어진 일을 하고, 돈을 받지 않아도 그저 묵묵히 나의 길을 가는 것 그 자체가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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