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라는 건 없다.
우울증, 마음의 감기라곤 하지만 도대체 왜 걸리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삶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한 번의 이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복지가 만족스러운 직장에서 좋은 동료들과 즐겁게 지내고,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우울함이라곤 모르고 살았다. 더 바라는 점이 있다면 그저 이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욕심뿐이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도 하고, 내꿈도 끝이 없었다. 그만큼 에너지가 넘쳤다. '올해는 얼마를 더 모으고, 다이어트에 성공해야지' 이런 소소한 꿈처럼 나의 다음 스템은 언제나 정해져 있었고, 늘 늦고 빠름은 있어도 반드시 달성했다.
나는 이 순간이 영원할 줄 알았다. 내 인생은 걸림돌이 될 만한 게 없었다. 3월 1일을 만나기 전까진 말이다. 여느 때와 같이 일을 하던 그 때 갑자기 머리 위로 큰 쇳덩이가 쿵하고 떨어졌다. 순간 '머리가 두 동강이 났다'고 생각했다. 통증보다는 머리가 잘 붙어있는지부터 체크했다. 요리조리 만져봐도 멀쩡했다. 다행이라는 생각 다음에는 땀으로 추정되는 축축한 땀을 닦아냈고 일어선 순간 바닥은 피로 흥건했다. 그렇게 응급실로 실려갔다. 정신은 멀쩡했지만, 불안한 마음에 구급대원분께 여쭤봤다. "저 별일 아닌 거 맞죠?"
의사선생님은 분명 괜찮다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그 후로 잠을 자지 못했다. 잘먹고 잘자는 삶이 당연했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어 버렸다. 게다가 내 인생에서 절대 마주할일 없는 진단까지. 우울 에피소드. 우울증도 아니고 우울 에피소드는 또 무엇인가?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잠을 잘 자지 못하며 식욕이 없고 자부심이나 자신감이 결여되고 죄책감이나 가치없음도 느낄 수 있다. 기분저하의 정도는 매일 다르며 환경에 좌우되지 않고 흥미나 즐거운 감정의 소실, 평소보다 몇 시간 먼저 일어나기 등의 소위 “신체적” 증상이 동반된다'라고 쓰여있다. 평균 이상이었던 내가 평균 이하로 살게된 순간이었다.
우울 늪에 빠져버린 뇌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내가 늪에 빠져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우울의 늪 말이다. 처음에는 다리 하나가 빠졌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가 발버둥을 칠 수록 그 늪에 깊숙히 빠져들었고 어느새 턱 밑까지 빠져 겨우 숨만 쉬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몸은 무겁고 행동이 어려웠다. 계속 누워만 있었고 몇 달 동안 지속되는 무기력과 우울감은 나를 더 바닥으로 끌어당겼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병원에 가는 것 뿐. 신경외과 치료에서 정신가정의학과로 진료가 넘어갔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에 마음이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특히 정신가정의학과는 진료를 받으려면 무려 두 달이나 기다려야 했다. 아픈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것도 문제지만, 수용할 수 있는 병원도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처음 진료를 받았던 병원에서 가까운 집앞 병원으로 경로를 수정했다.
만난 의사 선생님들은 모두 친절했다.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고, 용기와 응원. 그리고 약까지 잘 챙겨주셨다. 하지만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 지 몰랐다. 이건 의사 선생님도 몰랐다. 그저 사람마다 다를 뿐 시간이 흐르면 기억도, 고통도 점점 나아질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기다렸다. 매일 걱정과 불안만으로 하루를 통째로 날려버린 날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방청소를 해야한다'라는 입력값은 곧바로 행동으로 이끌지 못했고 또 다른 생각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어디부터 청소하지? 더 중요한 일을 해야할까? 차라리 책을 읽는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만 하다 저녁 6시가 되서야 가까스로 움직이곤 했다. 걱정이 삶을 어떻게 방해하는지 뼈져리게 경험했다.
일단 뭐라도 결정하자
한 번 빠진 우울의 늪은 무시무시 했다. 끔찍한 불안과 걱정에서 벗어나는게 급선무였다. 멍하니 책장을 바라보며 책한권을 집어들었다.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 실패를 딛고 유럽 10개국에서 도시락을 판매하는 사업가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이다. 나도 그녀처럼 멋지게 창업으로 성공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는데...라는 생각으로 책을 폈다. 그녀가 인생의 바닥이라고 느꼈던 순간 제일 먼저 시도한 것은 걷기였는데, 갑자기 따라해보고 싶었다. 일단 뭐라도 하고 싶었다. 온종일 침대에 누워있어 허리가 아프기도 했고, 이 늪에서 벗어나려면 이 공간을 벗어나야겠다. 그래서 하루만에 포기했던 걷기를 다시 한번 걸어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마치 그 저자가 된 듯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걸으니 걷는것도 할만했다. 햇살과 구름이 아름답게 느껴졌고, 때때로 살아있다는 감정이 올라왔다. 그러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이게 뭐라고 늪에 빠진 나를 구원할 수 있을까?' 비아냥 대다가도 임계점을 떠올렸다. 물이 끓기 위해서는 100도라는 임계점을 넘어야 한다. 99도에서는 물이 끓지 않는다. 우울감도 마찬가지다. 우울감을 넘어 서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이 걸어야 했다. 하루 1000보에서 1만보가 될 때까지 걸었다. 5~10분 걷던 하루에서 3시간까지 걷는 날들이 생겼다. 오래 걷고 들어온 날일수록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조금씩 삶의 패턴을 찾기 시작했다.
배터리가 15%였던 나는 그렇게 하루에 1%씩 충전했다. 별거 아닌 감기라고 무시했던 우울증에 호되게 당하면서 나는 궁금한게 많아졌다. 왜 걷고나면 기분이 좋아지는지, 어떤 걸 먹으면 기분이 나아지는지 알고싶어졌다. 삶의 모든 일이 어렵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나는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뇌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 것들을 글로 풀어내려고 한다.
늪에 빠진 나를 구원한 해결책은 의사선생님이 아닌 뇌에 있었다.